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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기
    취미생활/글 2015. 11. 12. 16:30

    눈이 뜨였다.

    지겹게 보던 천장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마치 머릿속이 물속에 잠긴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다시 눈을 감으려 한다.

    눈을 감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주변의 소리가 커진다.

    미친듯이 울리는 알림음.

    " 아 맞다." 라며 손을 뻗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든다.

    다시 알람을 끈다.

    그리고 몇번의 알람이 다시 울린 후에야 세상이 좀 말끔해졌다.

    일어나려는 찰나

    마치 세상이 새까만 타르에 덮인 것마냥 몸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

    몸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날 촉박하게 몰아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깊은 타르 속에서 힘겹게 몸을 들었다.

    화장실로 터덜 터덜. 

    마치 금방 감염된 좀비마냥 천천히 걸어나갔다.

    자동화된 기계마냥.

    문을 열고, 아무생각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손 발이 자동적으로 행동했다.

    사실 머리에 찬 물을 뿌리면 정신이 들을 것 같기도 했지만, 오히려 머릿속은 더 멍해지기만 했을 뿐이다.

    차가워서 오히려 더 마비된 머릿속으로, 아무런 의미 없이 머리를 말리고 있을 뿐이었다.

    머리를 다 말린 뒤. 나도 모르게 다시 이불 속으로 직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살인적인(뭐, 더 살인적인 사람들이 많고 많을 테지만) 스케쥴 덕분에, 정신이 다시금 번쩍 들었다.

    한시간 전이지만, 걸어가기엔 적당한 시간이다.

    바깥은 마치

    어지러운 만화경 같았다.

    힘이들어가지 않는 몸을 끌며, 강의를 들으러 내딛었다.

    오락가락 하는 세상을 들고, 강의를 끝마치자 막을 수 없을 듯이 뒤의 스케쥴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자 아까까진 생각 못했던 좌절감이 앞에 놓여졌다. 

    하지만 다가오는 시간의 선에서는 도망칠 수가 없었다.

    엣취.

    이래서 아는 사람들을 만들고 연을 맺는 거였나?

    내가 다시 생각해도 멍청한 생각을 하며 다시 집으로 달리고있었다.

    참을 수가 없어서 편의점에서 약도 사들였다.

    흔하디 흔한 천냥짜리 '한방감기약' 이라고 불리는 멍청한 '추출음료'를 사마셨다.

    적당한 위약효과와 단맛이 날 속여줄 것이다.

    물론 제대로 된 의약품도 샀다.

    사실상 이미 두번 발병해버려 감기를 버티지 못한다는 게 입증되었기 때문에, 하찮은 자존심을 버리기로 했다.

    (사실, 버린 거라고 할 수 있나? 병원을 가는게 맞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병원을 안가는건 내 아까운 돈과, 다리, 그리고 가장 큰 요인인 귀찮음이 한 획을 긋고 있을 것이다.)

    어쨌건 다시 생각을 마치고 있을 때는 차갑고 텅빈 집으로 다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타르속에서 길을 걷고 있었다.

    문득 길거리의 나무를 쳐다보았는데, 모두 낙엽을 떨구며 에너지를 비축하려하는 나무들 사이에 한 단풍나무가 홀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다들 떨구는데 동조하지도 않고 굳건히 혼자 색을 뽐내고 있었다.

    "정신나간 새끼"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강의를 듣다 흘러 넘치는 콧물 때문이었을까 머리가 흔히 말하는 불덩이마냥 타고 있을 때도 주변에서 아무도 몰라주는 현실에 대해서 지랄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세상이 마치 타르로 가득 찬 것마냥 내 몸만 슬로우 모션 비디오였기 때문일까. 뭐가 됐던간에 갑자기 아무 일도 아닌 일에 폭발한 것 같았다.

    수없이 기침을 하며 난 그냥 그저 이 지랄같은 감기의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떤 멍청이가 발명한 건지도 알지도 못하는, 알면 욕이나 더 하게될 만한 조별 과제와 다른 개인 과제 더미들이 날 타르와 함께 뒤덮고 있어서 였을까?

    아니면 개같이 수저로 결정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서, 나라인지 세상인지 뭐가 지랄같은지도 구분이 가지 않아서였을까.

    가끔씩 폭발해가는 그것이, 감기와 덮쳐져서 찐덕찐덕한 폭발로 이어졌던 것 같다.

    ' 대체 하고있는 게 뭘까 '

    라며 흔한 자기비판을 하며 다시 걸어갔다.

    원룸촌.

    뭐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난 이렇게 부른다.

    사람들이 말하는 ' 대학 ' 근처에는 항상 있는 것이니까 뭐.

    흔하디 흔한 그 길을 지나다가, 한 가정집 문 앞에서 멈췄다.

    가끔 보던 고양이를 찾아보았다.

    저 멀리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멍청한 표정을 보이며 손을 세번인가 흔들다가

    ' 병신 뭐가 좋다고 '

    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길을 들었다.

    뭐. 표정은 그대로였겠지만.

    그렇게 한 빌라의 문 앞에 놓여졌다.

    다시 몸이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몸이 자동화된 것 같다.

    구색이라도 맞추기 위해 만든 번호의 자물쇠로 이뤄진 입구를 지나쳤다.

    바로 앞에는 빌라답게 계단이 높게 쌓여있었다.

    분명 내려올 땐 그런 생각 안들었었지만, 지금은 더럽게 높다는 생각을 한다.

    분명히 3층인데 마치 8층 같네 젠장.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을 들어올려 한걸음 씩 올라갔다.

    어떤 사람이 뭘 옮겼는지 떨어져있는 흙을 보며, 흙의 내음새를 맡으며 나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채 길고 긴 오름길에 올랐다.

    어느새 문 앞에 서있었다.

    문 앞에서 얼마나 서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지갑을 꺼내 그 속에서 열쇠를 든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토를 할만큼 자주 본 혼란아닌 혼란의 풍경이 망막을 통해 들어왔다.

    늘 그렇듯이. 길고 긴 한숨을 쉬며 들어와 문을 닫고 신경질적으로 문을 잠군다.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얇아터질만한 벽을 뚫고 저 옆까지 파동이 닿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소리질렀다.

    ' 엿먹어라 '

    라는 의미의 소리가 세상을 채웠다.

    뭐, 찾아오면 조그만 죄송을 표하지.

    멍청한 생각을 또다시금 하면서, 습관적으로 노트북을 열어재꼈다.

    다시 나가봐야하는 절망적인 생각은 저 지평선 너머로 일단 집어던졌다.

    노트북이 지랄맞은 세상을 먹어치우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의 벽이 다가와서 다시 지랄맞은 세상이 내 눈앞에 가득 찰 때까지-, 이렇게 휴식아닌 휴식을 하고있을 것이다.


    문득 생각해보니- 감기가 아니라 몸살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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